문인송이라는 이름은 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서 100미터 안쪽에 세 명의 문인이 배출되었다는 점을 기념하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인문적 자원이 풍부한 마을도 아닌 평범한 농촌 마을에서 세 명의 문인, 그것도 나무 곁에서 자란 사람들을 문인으로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무척 컸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면 그 세 문인은 누구일까? 궁금함에 자료를 찾아보니 김천 지역에서 최초의 문인으로 이름을 올린 홍성문 교수, 김천 지역 주민 최초로 시집을 발간한 이정기 교수, 그리고 봉산면 출신으로 결혼과 동시에 이 마을로 옮겨와 등단한 김천 최초의 소설가 심형준 작가이다.
보호수 11-26-17호인 김천 향천리 직지문인송은 삼백 년 전에 이 마을에 살던 해주 정씨의 선조가 심은 나무라고 한다. 마을 뒷동산 언덕마루의 평평한 자리에 홀로 우뚝 서 있는데,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에게 신목으로 여겨지며 잘 보호한 덕에 지금까지도 생육상태가 매우 좋아 보였다.
마을에 찾아간 날 나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맘에 주민을 만나 보았다.
89세 손종록 어르신께 나무에 관해 이것저것 전해 들었다. 어릴 적에는 당산나무로 여겨서 제를 지내던 곳이라 함부로 노는 아이들은 없었고 어른들이 힘들거나 고난이 닥쳤을 때, 소원을 비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날 대항면 김응옥 팀장과 김정희 주무관이 직접 어르신을 부축해서 나와서 대항면의 자랑인 문인송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들었다.
오늘따라 비가 와서 그런지 더욱 비장한 자태가 느껴진다. 굽이굽이 뻗은 가지가 300여 년의 사연들을 다 품고 있는 듯하다.
문인송의 자태를 여러 각도로 찍어서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혼자만 보고 그 감동을 느끼기에는 내가 욕심쟁이가 된 듯하다.
가슴 벅찬 만남을 뒤로 한 채 나도 소원을 빌고 왔다. 고즈넉이 내리는 빗방울에 뭔지 모를 아픔을 문인송에 넘겨주고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