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길 부의장과는 항상 공적인 자리에서 엄숙한 모습으로 봐왔던지라 편안한 모습으로 인터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들, 딸들을 시집, 장가보내고 여느 할아버지처럼 손녀 이야기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어 오세길 부의장의 과거를 소환했다.
오세길 부의장은 현)용인대를 졸업하고, 교육대학원 행정과를 졸업한 준비된 정치가이다. 지금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으며, 항상 움직이는 것이 습관이 되어 뭐든지 활기차게 한다. 게다가 현재는 포도농사도 하고 있다.
오세길 부의장은 “시민의 입장에서 행정절차가 진행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농기구를 빌리면 오후 4시쯤 반환해야 하므로, 뙤약볕에서 일을 하다 정신없이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반환시간을 더 늦추면 농부도 마음 놓고 농사를 할 수 있고, 관리자들도 재촉할 일이 없다. 관리자들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닌 민원인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규정을 만드는 것이 일의 효율과 농민들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 행정인들은 실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놓치기 쉬운 부분인데 농부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는 점이 과연 실무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오세길 부의장은 “농사뿐만 아니라 장사도 하고 여러가지 경험을 해서 그런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있다. 생각이 현실화 되려면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대기 중인 것도 있고 의논 중인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감탄사가 연달아 나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들과 특히 이번 9대 시의원들이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시민들과 소통하고, 의회에서 할 일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말에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예산편성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골고루 해야 한다고 한다. 시의원이 하는 일이 조례제정이나 개정, 예산심의 및 의결, 감사, 지역의 일에 관한 처리 권한도 갖고 있다. 이런 막중한 책임감을 올바른 방향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예산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 편성된 돈이 모자라면 추경 예산을 한다. 시의원, 도의원이 재량으로 할 수 있는 돈으로 급한 것부터 집행해서 마무리 한다.”고 말했다.
열변을 토하는 부의장의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시의원을 하려 했던 계기에 대해서는 “옛날부터 남을 도우며 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44살이 되었을 때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다. 가족들에게 이야기하니 다들 응원해 주어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다. 2000년도 10월 보궐선거에서 초선이지만 무투표로 입성했다. 중간에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주변의 권유로 제9대 시의원으로 도전해서 당선되었다. 이번 시의원들은 이명기 의장을 비롯해 열정적이고 서로 화합이 잘 되어서 일을 찾아 다닌다. 한마디로 이번 9대는 멋진 원팀이다.”라며 웃으며 자랑한다.
힘들었을 때는 어떻게 헤쳐 나가냐는 질문에는 “제일교회 집사를 하며 보람을 느껴 힘든 일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또, 권사인 부인 덕분에 힘들었을 때 많은 위로를 받았다. 기도에 매진하고 성경 말씀을 되새기며 마음을 안정시킨다. 또한, 박팔용 전 시장과 선배들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 특히, 도에서 국장도 하고 부시장, 부군수까지 한 장우혁씨는 은퇴한 뒤 고향인 감문에서 지내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지기지우가 되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말하며,
“그중에서도 인생에서 힘이 되어준 멘토는 역시 부인이다. 내 아내여서가 아니라 정말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어떠한 큰일이 생겨도 누구를 탓하는 법이 없고, 늘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세상에서 제일 존경스럽고 아름다운 멘토이다. 한평생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고 하며 결혼했는데 마음고생을 많이 시킨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초심을 잊지 않고 부인에게 힘이 되어 준다고 하니 부러운 마음이 든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 6시에 밭에 가서 농사를 짓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부인 가게에서 일을 돕고, 마지막으로 시의원 역할까지 완벽하게 하는 오세길 부의장에게 시민들이 뜨거운 응원을 전한다.